1만5627채. 부동산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아실’이 계산한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규모다. 정부가 예상하는 2024년 서울 공동주택 입주물량(1만6681채)과 비슷하다. 어떤 기준으로도 1990년 이후 역대 가장 적은 입주물량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연평균 3만3595채였다.
내년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집계 기준 올해 1~10월 서울 주택 인허가 물량은 2만1849채로 전년 동기 대비 40.1% 감소했다. 최근 10년간 평균과 비교하면 63.6%나 줄어든 물량이다. 인허가가 줄면 3~5년 이후 입주물량은 그만큼 줄어든다.
아실은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2025년에는 2만1590채, 2026년에는 1061채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아파트 입주물량은 내년 9만6372채로 올해(9만7758채)와 비슷하지만 2025년에는 5만0671채로 절반으로 줄고 2026년에는 1만9240채까지 급락한다. 인천과 다른 광역시도 2025년 이후 입주물량이 급감한다.
전국적으로 입주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건설환경의 영향이 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 때문에 주택업체들이 PF 대출을 받기 어렵고 높아진 땅값과 급등한 공사비 등으로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기 어려워졌다.
입주량 감소는 집값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입주물량이 줄면 전셋값이 오르고, 오른 전셋값은 다시 매매가격을 자극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내년 이후 집값 반등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근거로 입주물량 감소를 꼽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입주물량 감소는 내년 이후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입주량 줄어도 수요가 더 줄면 집값은 하락=아파트 입주량과 집값의 관계는 사실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입주물량이 집값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정부 때와 이명박정부 시기를 자주 언급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연평균 5만 채 이상으로 많았지만 어느 때보다 집값이 많이 올랐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상식이 작동하지 않았다. 반대로 이명박정부 때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연간 평균 입주물량이 3만 채를 겨우 넘었을 정도로 줄었지만 집값은 본격적인 하락 곡선을 그렸다. 역시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는 경제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최근 사례도 있다.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4만6000채~4만7000채 수준으로 급증했던 2019년과 2020년 서울 아파트값은 두 자릿수 이상 폭등했다. 노무현 정부 때처럼 공급이 늘었음에도 집값은 크게 올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파트 수요도 공급량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급이 아무리 많아도 수요가 그보다 많으면 아파트 값은 오르기 마련이다. 시장 상황이 좋으면 전세에 살던 사람이 누구나 내 집 마련에 나선다. 빌라(연립, 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에 살던 사람들도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 투자 수요도 가세한다. 공급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공급이 아무리 적어도 수요가 그보다 더 줄면 집값은 떨어진다. 집값 하락 우려가 커지자 집을 사려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내 집 마련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 수요는 잠적하고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조차 조금 더 떨어질 때를 기다리며 매수를 미룬다. 입주량은 줄었지만 주택 수요는 그보다 더 줄어든다. 입주량이 줄어도 집값이 하락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 때가 그랬다.
내년 이후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은 지금 시기가 이명박정부 때와 비슷하다고 판단한다. 아파트 입주량이 줄어들지만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 고금리 조건 등으로 주택 수요가 더 위축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기 어려운 구조라고 보는 것이다.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기존 재고주택 매물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입주물량이 줄더라도 매수세가 더 약해져 기존 재고주택 물량이 쌓이기 때문에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게 집값 하락론자들의 견해다.
▶집값은 입주물량 후행지수=이와 달리 아파트 입주물량이 주택시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중장기적 흐름을 강조한다. 장기 시계열 지표로 입주량과 아파트 가격 변동률을 비교해 보면 ‘경향적’으로 부합했다고 분석한다. 입주물량이 매년 시장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집값에 바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2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서울 아파트값 하락세는 2019년과 2020년 입주물량이 급증한 효과다. 세종시가 2022년 이후 다른 지역보다 특히 많이 하락한 것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입주물량이 적정 수요보다 4~5배나 많았기 때문이다. 인천과 대구도 지난해와 올해 다른 지역에 비해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진 것은 최근 몇 년 새 입주가 크게 늘어난 효과라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