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흉기 피격 사건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9일 결정한 것은 의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경우에도 이런 폭력행위를 용납해선 안 된다”며 신속한 진상 파악을 지시하고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경찰이 공개할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이다. 습격 당시 피의자가 방송사 카메라에 생생하게 찍혔고 범행 증거도 확실했다.
경찰의 비공개 결정만큼이나 뉴욕타임스(NYT)의 피의자 신상공개도 의외였다. NYT는 3일 피의자 실명과 나이, 직업과 자택 위치 정보가 담긴 기사를 냈다. 기사에 첨부된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피의자가 이 대표를 찌르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다. 정확한 정보가 중대한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추측된다. 자극적이어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외신 관행도 반영됐다.
경찰은 피의자가 직접 쓴 변명문 원문과 당적 관련 정보도 일절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돼 국가가 좌파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짧은 범행 동기를 밝히는 것으로 대체했다.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에 따른 극단적 범행이라는 게 경찰 수사의 결론이다.
경찰 수사 결과는 일반인에게 이번 범행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언론에 따르면 피의자는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하고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한 60대 남성이다. 전과도 없다. 특별한 일이 아닌 그가 이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수십 명의 눈앞에서 유력 정치인의 목을 흉기로 찌르는 것이 납득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60대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다. 경찰은 그가 어떻게 왜곡된 정치 신념을 갖게 됐는지, 그의 행동이 어땠는지 자세히 밝혀야 했다.
미흡한 정보는 민주당 자작극 대통령 배후설 등 음모론에 불을 붙였다. 온라인상에는 피의자의 범행 동기와 배후, 경찰이 피의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온갖 허위 정보와 음모가 난무했다.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의혹만 쏟아지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멀어졌고 사회적 혼란과 불신만 가중됐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은 또 있다. 이 대표가 피습당한 뒤 지역 최고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부산대병원을 두고 응급수술을 받기 위해 소방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결정이다. 위급했다면 부산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위급하지 않은데 헬기로 병원을 옮기는 것은 특권이다. 가족이 원했다는 이유로 지역 의료 강화를 주장해온 야당 대표의 서울대병원행이 쉽게 납득된다면 지역 의료 불신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야당 대표의 표리부동은 정치혐오만 부추겼다.
아니나 다를까 민심은 윤 정부를 외면하고 이 대표를 동정하지 않았다. 1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 견제론(51%)이 정부 지원론(35%)보다 16%포인트나 높았다. ‘미래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대표의 부산·울산·경남 지지도는 21%로 이전보다 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3%로 15%포인트나 급등했다. 이 대표 퇴원의 첫마디인 ‘상대를 죽이고 없애는 전쟁 같은 정치 종식’은 투명한 정보와 진심 어린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