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올라 한강다리 앞에 오른 주인공 배진수(류준열)에게 100만원 입금과 함께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어요.” 고민 끝에 수락한 진수는 의문의 8층 건물에 입성, 3층을 선택한다. 그는 분당 3만원씩 상금이 쌓이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른다.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결정이야!” 그런데 사실 8층을 선택한 사람은 분당 34만원을 벌고 있었다.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감독 한재림)는 8명의 인물을 ‘그럴듯한 가짜’로 둘러싸인 8층 건물 안으로 몰아넣고 관찰하는 쇼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쇼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시간당 자동으로 상금이 생긴다는 것. 시간을 연장해 쇼가 계속되는 것만으로, 계속 벌 수 있는 구조다. 이 세상 안에서는 시간이 곧 돈인 셈이고, 버틸수록 돈이 된다는 얘기다. 1층에 사는 사람은 분당 1만원을 버는 반면 8층에 사는 사람은 분당 34만원을 번다. 1층이 하루에 1440만원을 벌 때 8층은 5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삶의 질은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계급이 형성된다.
8층짜리 건물은 자본주의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8명의 인물은 전형적이다. 소시민(1층 배성우), 정의로운 사도(2층 이주영), 평범한 남자(3층 류준열), 기회주의자(4층 이열음), 평화주의자(5층 문정희), 힘센 남자(6층 박해준), 브레인(7층 박정민), 돌아이의 매력녀(8층 천우희) 등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은 바깥 세상과 다르지 않다. 매끼 밥을 먹어야 하고, 돈을 벌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간 끌기에 기여하지 못한 사람은 밥을 먹을 때 눈치를 본다. 특히 참가자들이 시간을 벌기 위해 장기자랑을 하는 부분은 능력주의로 포장되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는 코로 리코더를 불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자랑할 것이 없어도 출렁일 때, 다른 누군가는 선정적인 쇼로 뜨겁게 돈을 번다.
화장실을 정하는 것부터 왕 게임까지 참가자들은 투표로 공정을 가장하지만 내부 상황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가장 많이 돈을 벌고 아래층 사람들에게 식사를 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8층이 최고 권력자여서 참가자들은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계급과 권력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립과 갈등이 생기고 암투가 벌어진다.
한정된 공간에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쟁한다는 포맷은 기시감이 상당하다. 우선 넷플릭스 최고 효자 상품 ‘오징어 게임’이 곧바로 연상된다. 제작진이 차용했다고 밝힌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 ‘파이게임’ 외에도 각종 서바이벌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오버랩된다.
그렇다고 더 에이트 쇼를 오징어 게임의 아류로 볼 수는 없다. 본질적인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 특수한 상황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면, 더 에이트 쇼는 현실 사회에서 사는 모습 그대로를 양식화해 보여준다. 또 오징어 게임이 비교적 공평한 조건으로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 혼자 남아야 승리하는 게임이었다면, 더 에이트 쇼는 참가자들이 ‘다함께’ 생존해야 더 많은 상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다만 불평등한 조건을 갖고 시작한 저층 사람들의 희생이 요구된다.
사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블랙코미디로서는 흥미롭지만 쾌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습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좋은 출발에 비해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지리멸렬해지는 것도 아쉽다. 다만 등장인물 중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지되는 긴장감은 장점이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 3층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류준열은 “3층 캐릭터는 시청자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인물”이라며 “캐릭터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때 공감이라는 요소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내 마음대로 옷을 사 입고 혼자 상류층처럼 당당하게 살고 있는 8층은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다. 그는 돈보다 쇼에서 벌어지는 즐거움을 궁극적인 목표로 탁구공처럼 되받아친다. 이를 연기한 천우희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인물이 무엇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에피소드마다 각 층에 사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3층이 1화를 열고 8층이 2화의 중심이 되는 식이다. 한재림 감독은 “영웅이 무언가를 해결하는 구조보다는 사람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며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생기는 구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